17.1.7 동네 마실
화야산 상고대를 보았다는 라이더의 블로그에 흥미가 생겨 주말 번개 공지를 올렸건만, 호응이 없다.
에든 님이 질퍽거리지 않겠냐고 그냥 동네 마실 가잔다.
그렇게 해서 AAA 님까지 셋이서 느즈막한 시간임에도 약간 쌀쌀한 10:00에 탄천 합수부에 모였다.
탄천 자전거도로는 최근에 유난히 많이 지나다니게 된다. 한때는 안양천 자전거도로를 그렇게 지나다니더기, 그쪽은 최근에는 인연이 없다. 유행이 돌고 돌듯, 자전거 타는 습관도 이쪽으로 한 번, 저쪽으로 한 번 쏠리게 된다. 재밌는 일이다.
수지 쪽 동막천을 따라 가는 길은 처음이다.
송종국FC를 지나 말구리고개를 내려오니 고기리 '해밀'이다. 브런치 먹기로 했으니, 먹고 가기로 한다.
자전거 타면서 1시 이전, 아니 12시 이전에 식당에 들어오기는 또 처음이다.
오늘은 처음이 많구나.
셋이서 세 종류의 음식을 시켜, 아줌마들 마냥 수다를 떨면서 시간은 훌쩍 건너뛴다. 즐거운 시간은 짧다.
힘들고 괴로운 기억은 그 당시에는 영원할 듯이 오래 가는 듯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시련의 기억은 감각이 없어지고 기억이라는 무미건조한 흔적만 남는다. 즐거운 시간은 반대로 빠르게 지나가지만, 기억 속에 추억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오래도록 지속된다.
뇌는 이것 저것 잡다한 것을 잊지 못하고 담아두면 용량을 초과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고통은 쉬 잊고, 즐거움은 오래 남아서 인간을 행복한 삶 속에서 사는 것처럼 망각에 빠뜨리기도 한다. 하기사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어진 수명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싶다.
자전거를 타면서 힘든 시간이 즐거운 시간보다 물리적으로 많을 것은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짬만 나면 두 바퀴에 몸을 싣는 것을 뇌더러 고맙다고 해야되는지, 멍청하다고 내가 거기에 속아 넘어가는 걸 참지 못하고 끊어야 하는지 어느게 제대로 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답을 모르니 일단 마음이 가는대로 하고 볼 일이지. 해도 실망, 안해도 실망이면 해보고 실망하는게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당연히 해야 할 도리 아닌가. 유한함에 대한 예의로서 말이다.
여우고개로 올라 가는 길은 지난 주(?) 와 본 길이라 익숙하다. 익숙함은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재미를 반감시키는 단점이 있으니, 속칭 길치는 행복할 것이다.
하오고개도 넘는다. MTB로만 다니다가 로드바이크로 오르니 한결 수월하다. 역시 도로는 로드바이크의 영역이다.
개인적으로 로드바이크를 즐기지 않지만, 두 종류를 섞어서 필요에 따라 변환장치가 있는 자전거가 있으면 하는 쓸데 없는 욕심이 든다. 산 속에 들어가 자연 속에 몸을 담그는 걸 좋아하니 그래도 MTB에 더 마음이 가기에 결국은 그런 자전거가 나와도 MTB를 따로 가지고 있을 성싶고, 그렇다면 다시 로드바이크도 따라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하이브리드 자전거는 필요 없는거네. 무슨 쓸데 없는 생각을 하다가 원점으로 돌아오다니...
기온이 예상과 달리 너무 오른다. 참지 못한 AAA 님이 겉옷을 어찌하지 못해 결국 탑튜브에 묶게 된다. 날렵하던 로드바이크가 투어링바이크로 변신한다. 달랑 옷 한장 말아놨더니 전혀 다른 얼굴을 하게 된다.
평소 편한대로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동네 양아치 같다고 놀리는 식구들의 말이 과장이 아니다. 그러하다. 필요할 때는 때론 가꾸기도 해야 된다. 때와 장소에 따라 변신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으니, 혼자 살 수 없는 운명이니 그에 맞게 살 줄도 알아야 한다. 요즘 살짝 한 발 담그고 있는 장자의 주장도 그게 아닌가 싶다. 온전히 나라는 존재로 살려고 한다면, 나만을 내세워서는 안되고 오히려 타자와의 관계를 "잘" 해야 나를 살아갈 수 있다고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