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2014.12.25~27 설악동야영장

LateButNotTooLateToDream 2014. 12. 29. 15:37

얼마만의 캠핑인가.

큰 놈 고3이라는 핑계와 자전거에 묻혀 사느라 캠핑 장비가 어떤지 살펴 보지도 않고 창고에 쌓아둔지 만 1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큰 놈이 시험을 망쳤다고 의기소침해서 12시간 취침에 하루 1~2끼를 먹으면서 컴퓨터랑 붙어 사는 모습이 안스러운 한편,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일전에 술 한잔하며 살짝 떠보니 캠핑 가자는 말에 쉽게 그러자고 응한다.

일찌감치 예약을 하고 26일 휴가를 내었다.

이브의 여파인지 올림픽대로가 이렇게 한산해도되나 싶을 정도다.

덕분에 3시간을 예상한 길이지만 실제는 2시간만에 야영장에 도착했다.

예약 상태로 봐서 좀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캠퍼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일찍 도착한 만큼 텐트를 치고 점심은 중앙시장에 나가서 먹기로 했다.

온도는 그렇게 낮지 않은데 바람이 좀 거세어서 텐트 치는데 애들 먹었다.

팩은 4개 정도로 최소화하는데 이번에는 하단에 빙 둘러서 팩을 모두 박아야 했다.

펠렛난로까지 설치하고는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거리가 멀지 않아 좋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시장에 놀랬지만 막상 뭘 사고자 했도 딱히 살 만한게 없다.

유명한 닭강정은 모든 사람의 손에 예외 없이 한상자씩 들려 있다.

잠시 둘러보고는 점심은 칼국수로 간단히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닭강정과 돼지 목살을 샀다.

오후 시간이 온전히 남으니 캠핑장으로 돌아가봐야 할 일도 없고 해서, 양양쪽으로 7번국도를 따라 내려 갔다.

대학시절 아내랑 여름에 놀러 왔었던 하조대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터라 주저 없이 달렸다.

큰 놈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왔다가, 대포항 가지 전 먼저 하조대 정자와 등대에 들어 탁 트인 바다를 보니 개운한 모양이다.

이 무뚝뚝한 놈의 입에서 오랜만에 바다를 좋다는 말이 나온다.

돌아오는 길에는 낙산사에 들렀다.

예전 같으면 절에 왜 오냐고 투덜거릴건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절간에 가거든 소원을 빌어라도 했더니 아무 소리 안한다.

홍련암과 해수관음상 앞에서 다시 한번 바다를 보았다. 바다는 조금 멀찌감치 보아도 좋다. 

저녁은 닭강정을 먹다가 닭볶음탕으로 밥을 먹자니 많이 먹히질 않는다. 맥주까지 마셨으니 더 그렇지만서도.

오랜만의 운전과 조금 걸어다닌 기분 좋은 피곤함이 겹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펠렛을 채우느라 밤 사이 몇번 깨기도 한 영향인지 7시가 넘어서 바깥이 밝아져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침은 어제 먹다 남은 밥과 닭복음탕을 데워서 먹었다.

잠시 쉬었다가 척산온천에서 비싼 목욕을 하고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신흥사쪽으로 올라갔다.

9천원이나 받는 입욕비에 걸맞지 않은 80년내 수준의 썰렁한 탕에 샴푸도 없는 어이없는 목욕시설이니 씻고도 개운하지 않다.

케이블카는 외국관광객까지 가세하여 바로 탈 수 없고 20여분을 기다려서야 권금산성으로 오를 수 있었다.

먼저 안락암으로 내려가  무학송을 보니 800년이나 된 나무라기에는 조금 작다. 바람이 얼마나 많이 부는지 알 수 있는 크기와 모양을 하고 있다.



권금성 봉화대는 오르지를 못했다. 싫다는 놈을 억지로 끌고 갈 방법이 없다. 제 아무리 좋은 게 있더라도 본인이 싫다면야 어쩔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먼저 살아온 인생에 터잡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 해본들 귀찮은 잔소리에 불과하니 이 또한 어쩔 수 없다. 그냥 간단히 포기하면 된다.


주변에 펼쳐진 경치가 설악산임을 실감나게 한다. 


바람에 휘어진 소나무를 보니 생명력은 끊질김이다. 나 잘났다고 내 목소리 아무리 크게 한들 무슨 소용인가. 순응하며 살아야 잘 사는거지. 한편으론 그 순응도 힘겨운데... 


점심은 어제 사온 돼지목살에 밥이 조금 부족하니 코펠 바닥에 남은 누룽지까지 끓여서 깨끗이 비운다.

이번에는 고성 쪽으로 나서본다.

어제 강릉 방향은 시골스런 맛이 전혀 없는 도시적인 분위기라 조금 실망스러워 이 곳은 한적하길 기대해 본다.

이 놈이 많이도 답답한지, 한편으로는 바다를 보면 체증이 좀 가라앉는지 바다를 보잔다.

그래서 송지호해수욕장까지만 올라갔다가 오기로 한 길이다.

천강정 이정표를 보고 국도를 빠져 나와 청간정 아래 해변으로 내로는 길이 개방되어 있다.  

바닷 속에 잠겨서 이마만 살짝 드러낸 갯바위와 갈매기, 오리떼가 어루러져 발길을 잡는다.



모래사장에는 사람의 발길이 뜸해서인지 새발자국만이 공룡 발자국마냥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청간정에 오르니 이승만, 최규하의 휘호가 보인다. 여기에 고성군수의 글까지 더해 고성군수의 자질을 짐작케한다.

좋은 경치에 잠시 정화된 되었던 혼이 순간 어지럽다.

아래 주차장에 내려와 화장실 뒤쪽에 보니 최규하, 고성군수의 기념식수가 한그루씩 있다. 화장실 건물에 가려진 걸 보니 화장실 건물을 지은 사람이 혹시 고의가 아니었나 싶다.


청간정을 나와 국도를 조금 올라가니 천학정이 나온다.

여기서는 청간정에서 왼편 끝에 보이던 붉은색 등대가 오른쪽 끝에 보인다. 왼쪽으로는 항구의 테트라포트가 길게 튀어나와 경치를 망치고 있다. 


송지호해수욕장 앞에 보이는 죽도는 언뜻보면 갈대가 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섬이 가까이 있어 건너가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만 섬이니 그냥 쳐다보기만 한다.

모래사장을 밟으니 발 주변으로 숨구멍이 여러개 생긴다. 아래에 뭔가 있는 모양이다. 해변 모래사장은 조개껍질도 많고 쓰레기가 널려있어 조금 지저분해 보인다.

 

그렇게 하루종일 바다만 쳐다보다 저녁에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오니 캠퍼가 조금 더 늘었다.

저녁은 어묵탕에 맥주를 마시고 니니 밥은 손도 대지 않게 된다.

피곤함에 그대로 골아떨어져 한참을 자다 주변의 텐트 소음에 잠시 깨었다.

두어집이 모인 모양인데 꼬마들 소리도 나고 해서 시계를 보니 12시나 다 되었다.

조금 지나면 나아지려나 했는데 주변이 다 조용해져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술이 사람을 먹는 단계인지 목소리들이 점점 커진다. 이건 아니다 싶어 텐트로 다가가보니 3가족이 모여서 텐트를 살짝 열어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시끄러우니 조용히 해달라고 하니 이내 목소리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러고도 한참을 이야기가 지속되었다. 이들이 조용해지고 나서야 겨우 다시 잠이 들었지만 이른 시간 잠을 잔 것도 있고, 바람이 좀 불어서그런지 펠렛이 지나치게 많이 소모되어 몇번을 잠에서 깨어 났는지 모르겠다. 

밤 사이에만 펠렛 1포대가 다 소모된 듯하다.


아침을 최대한 늦게 일어나 철수를 마치고 나니 11시쯤 되었다. 

돌아오는 길은 출발할 때보다 차량이 조금 더 많다. 그렇지만 길이 막힐 정도는 아니니 중간에 점심 먹느라 휴게소를 들렀음에도 불구하고 3시간만에 집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하는 캠핑이라 힘들지만, 그래도 자연 속에 몸을 던지고 하루는 오롯이 느긋하게 보내다 오니 기분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