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3.27 공주-봄은 아직 만개하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 몸이 무거워 이상하다 했더니 감기에 걸렸다. 자전거 타러 나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장 보러 갔다 와서 아내랑 둘이서 매운 낚지로 보양 겸 땀을 흘려본다. 사실 여기서 소주를 안 마셨어야 되는건데, 강한 맛에 소주를 털어 넣었더니 저녁이 되면서 감기가 더 악화되었다.
그렇지만 지난 해 공주 밤꽃 향에 취한 기억이 생생해, 이번에는 어떤 길이 반겨줄지 기대가 크다보니 몸을 달래본다.
일요일 아침, 그럭저럭 움직이는데 큰 지장이 없어 보여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지난 밤 너무 자서인지 차간에서 잠이 오질 않아 눈만 감도 있다가 정안휴게소에 내렸다.
서울보다 아래인데 예상과 달리 공기가 서늘하다.
익숙하게 쌍달리로 향하는 길이다.
임도 오르기 전 한숨 돌리고.
아는 길이니 호흡 조절은 잘 된다. 산으로 올라오니 아래와 달리 바람도 잦아들고 햇살만 비추어 따뜻하다.
오늘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인 시륜제는 무성산 순환임도 올라와서.
돼지머리를 대신하는 헬멧, 술을 대신하는 물, 저마다 준비해 온 과일, 이른 아침 미리 준비하지 못한 떡은 휴게소에서 산 빵으로, 그렇게 간소하지만 갖출건 다 갖추게 된다.
해 바뀌고 한 겨울에 사고가 몇번 있다 보니 무탈하길 기원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익숙한 길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너무 긴장을 놓았다.
첫번째 갈림길에서 정면은 가림막이 있어 한천리로 내려가는 임도로 가버린다.
신나게 내려올 때는 좋았다. 잘 가꿔놓은 무덤가 주변의 매화도 구경하면서 말이다.
이 길이 아닌데 싶지만, 잘못 들어서도 어차피 길은 통한다는 생각으로 마을로 내려왔더니 돌아도 너무 돌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는 돌아가는게 최선이다. 2.5km를 다시 올라가야 된다.
잘못 내려갔던 길로 다시 올라오고.
대회가 열리는 장소여서 그런지 화살표로 진행 방향을 잘 표시해 놨다. 여기서 우회전해서 순환임도 한바퀴 돈 다음 다시 내려 가는 삼거리이다 보니 사실 처음 출발한 방향에서 화살표를 보면 더 헷갈릴 수도 있다.
따뜻한 날씨에 오랜만에 밟아보는 임도의 돌은 타이어를 한번씩 거부하면서 온 몸이 긴장하게 하지만, 셀카도 한번 찍어보면서 여유있게.
계실리 산막마을 아래 밭의 초록빛에 눈이 확 트인다. 사실 울창하지는 않아도 이런 기운이 온 산에 퍼질 걸 기대하면서 나선 길인데 아직은 조금 이르다.
마곡사 앞 식당가에서 마땅한 데를 못찾아 다시 길을 되돌아 나가 들어간 식당. 닭볶음탕은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청국장으로 간단히 먹고 나선다. 직접 담근 청국장이라는데 맛이 심심하니 좋다.
다시 임도를 타기 위해서는 도로 두개를 넘어야 한다. 지난 해 왔을 때 완만하지만 산을 잘라먹지 않고 끝까지 넘어가는 고개길에 마음이 지친 경험이 있다보니 미리 힘들다.
구계리 임도 앞. 지난 해에는 6월에 와서 더위에 고생이 많아여서 인지, 이번에는 그래도 할 만하다.
점심에 고기 못 먹은 허기는 피아노님이 가져 온 육포를 나눠 먹는 걸로 해결 중이다.
이 길은 유달리 업다운이 많아 5km 정도 밖에 안되는 짧은 길이지만 지루할 새가 없다. 오른편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풍광도 눈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구계리로 내려와 봉수산으로 가기 위해 세동리로 들어가면 나오는 또 하나의 고개. 마을 마을 연결되는 조그마한 고개는 그 경사도가 얼마인지 분간하기도 힘들다. 알면 더 힘들지도...
추계리로 이어지는 고개길 정상에는 느티나무가 420여년의 생명을 자랑하고 있다. 더운 여름날 이고 지고 넘는 사람들의 땀을 씻어줄 바람과 그늘을 만들어주었을 느티나무는 이제 차로 휭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보고 들어 동네 어귀마다 한 그루씩 이정표가 되어 주는 나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부터는 그 나무를 보면 그 동네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알려주기에 오래된 나무를 보면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봉수산 임도는 생략하고 송악저수지로 곧장 내려간다.
송악저수지를 돌아 나와 신정저수지로 향하니 마지막(이길 바라면서) 고개가 나온다.
신정호를 통과하니 고개 없이 온양으로 들어 온다. 도착시간 6시를 넘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간단히라도 저녁을 먹고 들어가야 될 형편이다.
치맥으로 허기만 해결하고 전철 시간에 맞춰 복귀하니 야근한 느낌이다. 피곤하지만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낸 결과는 흥분 속에 쉽게 잠들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