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2016.8.21 서울 최고 기온 갱신이라고!?(용문산 상원사 계곡은 추웠다)

LateButNotTooLateToDream 2016. 8. 22. 10:11

용문역 10:30  상원사계곡 7~8km. 

운동을 해줘야만 그나마 유지되는 몸이라 어느 정도는 움직여줘야 되는데 이건 운동 번개가 아니니, 처음 공지를 보고는 건너뛰어야 되나 합니다.

하지만 토요일 자정을 넘기고 잠자리에 누웠더니, 느즈막한 시작 시간부터 마음에 들고, 여차하면 운길산역쯤에서 달려보자 싶습니다.


아침 눈 뜨는 시간은 같은데, 몸은 물 먹은 솜뭉치라서, 그냥 집에서부터 전철 타고 가고 싶습니다.

집에서 나선 내리막길에 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스쳐주니 정신이 들어, 이수역까지만 하다가, 결국 서빙고역까지는 자전거로 갑니다. 전철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보단 이게 낫죠.     

 

용문역에 도착하니 6명 집합(존칭 생략): 도마뱀, 피아노, 날개, 가람, 사또, 늦꿈.


이른 시간이라고 상가들은 식사를 하는 곳 외에는 아직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역 앞에서 전통시장 열리는 곳으로 가보기로 합니다. 골목마다 평면 공간만 있으면 다들 그림을 그려 놓으니 감흥은 없지만, 여튼 이런 길도 잠시 만납니다.  


흡족한 모습들


족발 하나 살려고 돌아다니다 보니 동문역 주변 지형은 다 알 정도가 되었으니, 그저 반갑습니다.

전라도 사투리가 탈색되지 않은 넉넉한 풍채의 주인 아주머니가 맛 보라고 내어준 감자떡도 맛있습니다만, 6명에 족발 3팩이니 더 이상 뭐가 필요해 보이진 않습니다. 많이 드시는 분들이 아니다 보니, 하나로마트에 들러도 딱히 더 살 게 없어 보입니다.  


상원사로 향하는 길은 멀리 않으나, 은근히 오르막이라 아직은 덥습니다. 보리고개 체험마을로 들어서니 그늘을 찾아들어가기 바쁩니다. 

아래 개울가도 물놀이하기에 좋아 보입니다만, 정자 사용료를 지불해야 될 모양입니다. 이 동네분인듯 초로의 남자분이 밝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제 여기서부터 상원사로 가는 길에서 적당한 공간을 찾으면 됩니다. 




생각보다 멀리 올라가지 않고도 좋은 자리를 찾습니다. 얼마 타지도 않은 자전거는 바로 휴식모드로 들어갑니다. 오늘은 사람보다 자전거가 휴가인 모양입니다.


사진으로는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 표현되지 않네요. 가슴 높이까지 잠기는 깊이의 공간이 상당하고, 큰 바위가 하나 자리잡고 있는 바닥도 깨끗합니다.  계곡 위 나무가 좌우로 이 곳을 감싸고 있어서 강한 햇볕은 전혀 들어 오질 않습니다.  


자 그럼, 이제 즐겨 봐야지요.





머리 위에 밤나무가 한 그루 있더니, 성질 급한 밤송이가 하나 떨어져 있길래 복숭아랑 같이 한 번 찍어봤습니다.


뭘 먹기에는 좀 그렇고, 물놀이도 잠시 있으니 추워집니다. 그래서 부족한 운동도 채우고, 몸도 데울 겸해서 상원사로 가보기로 합니다.

차량 진입 차단막 앞이 체험마을 물놀이 공간이어서 시끌벅적합니다만, 이 곳 위로는 차가 못 다니니 인적이 없습니다. 가물어 물이 부족할까 하는 걱정과는 달리 낭떠러지 아래로 세차게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나고 슬쩍슬쩍 보이는 소가 알탕하기 딱 좋아 보입니다.


조금 더 오르니 도로 옆으로 접근이 용이한 계곡이 이어지면서 아래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힘들게 올라간 만큼 더 좋은 곳이 있습니다. 이렇게 포장은 깔끔하게 되어 있으나, 힘겨운 경사가 갈수록 드세지는게 그만 올라오라고 용문산이 앙탈을 부리는 형세입니다.


대웅전 아래까지 자전거로 오르면, 한 근 정도는 넉넉히 빠져나갑니다. 

삼성각에서 내려다 보니 절터가 크지는 않은데 자리는 정말 좋습니다. 수리산 수리사는 좌우로 산이 감싸고 있다면, 여긴 영주 부석사 마냥 전망이 탁 트였습니다.   


문외한의 눈에도 사자석은 오래 되어 보입니다.


대웅전 기둥마다 걸려 있는 글이 제 수준에도 독해가 되니 찬찬히 읽어 봅니다.

 

目無所見無分別   목무소견무분별
耳聽無聲絶是非   이청무성절시비 
分別是非都放下  분별시비도방하 

但看心佛自歸依  단간심불자귀의 


이 글을 보니,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이 떠오릅니다. 이 나라 어머니들이 정말로 그렇게 살았다면 다들 도를 깨우쳐 열반에 들지 않았을까 합니다. (적고 보니 삼천포로 가고 있네요. ㅋㅋ) 



이제 내려가면서, 올라 올 때 봐 두었던 포인트를 하나 하나 확인해봅니다.


온 몸을 던져 입수하고 싶은데, 양말 벗을게, 신발 젖을게 귀찮아서 그냥 눈으로만 봅니다. 

目無所見無分別!  미련한 중생이 대웅전 글귀를 보고 실천해 보자 한 것이 얼마나 지났다고. 




땀을 흘리고 왔더니, 다시 입수한 계곡물은 시원하고, 배도 출출합니다.


족발보다 전라도식의 깔끔한 김치 맛이 일품입니다.


도마뱀 님이랑 둘이서 열심히 먹다 보니, 김치는 한 팩밖에 안 받아 왔다는 걸 상기하곤 나머지 분들을 위해 먹는 걸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가깝다고 용문역까지 갈 엄두는 안 나니 말입니다. 아마 생각 없이 다 먹었으면 용문역 갔어야 될 정도로 맛있습니다.  



가람 님 덕분에 커피까지 마시는 여유를 부려봅니다.


그러고 나니, 아쉬움이 하나 있습니다. 라면! 이거 하나 딱 먹어줘야지 싶어 입맛을 다시다 아래 마을 슈퍼마켓에서 라면을 사고, 냄비(에 밥, 김치까지)를 빌려 보기로 하고 내려갑니다.


바로 아랫동네 마트는 셧터가 아예 내려져 있습니다. 혹시 동네 주민들이 이용하는 구멍가게가 없나하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이젠 벽화도 모자라 돌담에도 페인트칠을 해 놓았네요.




 

마을 아래로 더 내려가 슈퍼가 보여 들어가니 '외출중'이라는 푯말이 인사를 건넬 뿐입니다. 유리 너머로 보니 라면은 보이지 않고, 과자, 음료수만 있습니다. 이번에는 라면을 못 먹는 거네요. 이렇게 가다 간 진짜 용문역까지 갈 지경이어서 포기. 빠른 의사 결정으로 몸이라도 편안해야죠.


이제 철수 준비합니다. 언제나 깔끔하신 날개 님은 양치로 마무으리.


남은 복숭아는 지하수로 깨끗이 씻어서 가방에. 물이 차가워서 사진 찍는 손이 다 떨릴 지경입니다. 이걸 나중에 피아노 님이랑 나눠 먹었어야 하는데,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부실한 뇌때문에 못 먹고 집까지 메고 와버렸어요.   


전철 복귀 중, 피아노 님이 제안합니다. 팔당역에서 자전거 타고 가자고. 

난 못 먹어도 GO. 도마뱀 님한테 토스트 딜까지 했는데, 안 먹히네요. 이럴 때 처자가 한 명 있었어야 못 이기는 척 따라 나설 건데, 요지부동입니다. 아쉽지만 피아노 님과 저만 팔당역에서 하차합니다. 


도마뱀 님이 평속 20km/h 내외로 달려야 된다고 했는데, 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 24~25km/h 정도로 가면서 뒤를 돌아보면 바로 붙어계셔서 잘 안 보일 정도로 전혀 뒤쳐지지 않고 탄천 합수부까지 무사히 잘 도착했습니다(중간에 우유랑 과자 잘 먹었습니다. 맨날 얻어 먹어요).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더니, 피아노 님이랑 헤어진 이후는 돌멩이를 맞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세게 떨어집니만, 안 맞아죽고 무사히 복귀해서 후기도 쓰는 걸 보니, 뇌도 다치지 않은 걸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