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2017.3.11 구례 까꼬막

LateButNotTooLateToDream 2017. 3. 13. 11:07

서울에서 봄을 기다리기에는 지난 겨울이 너무 추웠던 모양이다.

마음은 이미 봄꽃이 만개하니 기다릴 수 없어, 남쪽으로 내려가보기로한다.

구례 산수유축제가 3.18에 시작된다. 이때에 맞추려면 교통 체증이 심할 걸로 보여 한 주 앞당겨 먼저 간다.

구례로 가는 버스는 남부터미널 6:30이 첫차다. 올라오는 길은 17:30이면 센트럴도 있지만, 19:45분 막차가 속 편하다.

수요일 시외버스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니 남은 좌석은 4자리 밖에 없다. 돌아오는 차도 잘못하면 복귀 못하지 싶어 막차로 예매를 한다.


구례에 내리니 아직은 쌀쌀하지만 따뜻한 봄기운은 그 바람 속에도 살짝 숨어 있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다무락마을을 향해 가는 국도 변에는 매화도, 산수유도 꽃이 맺혀있다. 몸을 풀어야 되는데 시작과 함께 나타난 완만한 오르막이 오늘 여정을 알려주는 듯하다. 


신월리 마을길로 빠졌다가 섬진강자전거길로 내려서서 왼편으로 섬진강을 바라보며 신나게 달리다 다무락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상유길, 중유길, 하유길 도로명 표지판에 나란히 걸려있다. '상유길 178←2'라고 되어 있으니, 대략 2km 업힐이라고 짐작한다. 마을이 아래, 중간, 위 이렇게 나뉘어져 있음도 짐작이 되지만, 정작 길의 경사도는 짐작이 안되니 천천히 올라간다. 아랫마을은 도로와 접했으니 금방 지나가고,   중유길에 있는 다무락 마을도 어렵지 않게 오른다.  

과수원, 대개는 감나무고 드문드문 매화도 보인다. 여름에는 푸른 감나무 잎이, 가을이면 주황색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걸 생각하니 거리만 가깝더라도 바뀌는 계절마다 왔으면 싶다. 


높이 올라왔더니 해도 가까워지고, 산자락이 햇살이 좋은 곳이라서 그러는지 매화가 활짝 피어있다.  봄=꽃이라고 하지만, 이른 봄은 외롭다.  상록수 외에는 앙상한 가지만을 남기고 있는 나무와 허허벌판 횡하니 황토빛 속살을 다 드러내고 있는 밭을 배경으로 피어 있는 꽃은 가까이서 보면 화사하지만 한걸음만 물러서도 어색하다.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고, 뭐가 그리 급해서 남들보다 일찌감치 나와서는 사랑을 독차지하고자 하는 욕심만 보일뿐, 다소곳한 맛이 없다. 드센 보일뿐이다. 그래서 더 외롭다. 





이후 이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과수원과 불분명하게 연결되는 임도(라고는 하지만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다)는 gpx 파일을 다운받아 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상당히 헤메지 싶다. 어디 도로에서 까꼬(꼴?)막이라고 적힌 글을 본 듯한데, 전라도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글로 보니 웃음이 슬핏 나오더니, 지금은 고통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산이 별로 높아보지는 않는데, 비행기가 이륙 후 고도를 높일 때의 그 느낌으로 임도가 산 허리를 급하게 감아 올라간다.


정상 갈림길에서 앞으로 바라다 보이는 풍경은 하늘뿐이다. 저 맞은편 산이 지리산이다. 지리산은 소설 지리산을 읽은 이후 가고 싶은 곳 중의 하나지만 아직도 산 속을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성삼재까지 차로 오른게 전부다. 빨치산들이 밤 사이 마을로 내려와 식량을 구해서는 한 말씩 둘러메고 아침이 되기 전에 올라간 길이라는데, 인연이 없는건지 엄두를 못내는 건지 참으로 먼 곳이다. 아직까지는 인연이 닿지 않는다고 해야겠지. 




이후 이어지는 길은 내리막이면서 임도 정비 상태가 완벽하다. 오른쪽 발 아래에 시원하게 펼쳐진 들녁이 아득히 보이는 길을 한참을 달려서 다시 만난 오르막은 너무 힘들다.  갈림길에선 왼쪽이란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해밀 님이 중방리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기도 한다.  






이 길은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여서 구례 마을의 느른(?) 평야지대와 지리산을 계속 보면서 달릴 수 있어 춘천의 당림리 채종원의 짧게 트인 시야와는 대조된다. 조금씩 그 풍광이 바뀌니 지겨울 틈도 없다. 


두번의 갈림길에서 조심하면, 세번째에서는 내려가면 된다. 


임도가 높이 있었던 만큼 내려가는 길도 한참을 가파르게 내려간다. 비행기가 착륙하듯이 쑥쑥 내려간다.


신도리로 내려오는 길에 새로운 임도가 생겨서 위성지도와는 다른 상황이어서 당황스럽다. 헷갈리면 오래된 길로 가면 문제가 없을테니(아니다. 괜히 버려진 임도이면 고생을 제대로 할 수도 있다. 이럴 때가 길 안내하는 입장에서는 제일 난감하다) 우회전. 다행히 이 길이 맞다.

 

임도 끝나는 부근 무덤가 앞의 성황당.  고사목으로 보이는데, 감져 있는 천 줄이 오래되 보이지 않으니 최근에 이벤트가 있었던 모양이다. 자극적인 색에 잠시 발길이 멈추어진다. 


임도를 다 내려와서 저수지 앞을 지나며 길을 잃어 구례화엄사ic 앞에서 고속도로를 탈 뻔한 걸, 마침 지나가던 아주머니 덕분에 제대로 다시 길을 찾아 갈 수 있었다.


분토노인회관 옆 수돗가에서 물을 보충하고 있자니, 할머니 한 분이 집에서 나오셔서 어디서 왔냐고 궁금해 한다. 좀 있으니 밑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올라오면서 자전거에 관심을 가지고, 전기자전거냐고 물어 순간 당황했지만 말씀 중에 알톤 전기자건거를 타고 다니신다니 궁금증이 풀린다. 두 분 억양은 전라도이고 쓰는 단어는 경상도 방언이 많다. 여기서도 까꼬막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전기자전거가 아니면 까꼬막을 어떻게 올라가냐게 말씀의 요지이다. 옆에서 AAA 님은 사투리를 전혀 못 알아듣겠단다. 이러니 제주도 방언은 외국어 수준이 될 수밖에.   


젓소 농장 앞으로 올라가 고개를 넘어니 초지가 규모는 작지만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구만제 뒷산이다.





저 아래 다리를 건너 구만제로를 따라 가다 다시 임도로 들어서야 된다.


임도로 들어서야 되는데, 야생화테마랜드, 숲속 수목가옥이 있어 최근에 도로가 정비된 모양이다.  아스팔트 포장길, 그렇지만 경사도는 만만찮다. 여기서부터 1시간 정도면 산수유마을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실제론 여기서 오늘의 체력을 다 소비해 버린다. 


지리산자생식물원으로 연결된 길이 본격적으로 임도로 이어지면서 그 고도에 걸맞게 갈지자로 몇 번을 비틀어서야 정상에 도착한다. 전체적으로 오랜만에 길 자체가 중급인 코스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가 지리산 둘레길 중 하나인 방광-산동구간의 산길이다. 여기서는 해밀 님의 사진이 없다. 시간은 촉박한데, 길은 언제 끝날질 몰라 정상까지 쉼없이 내달렸다. 아마도 여기에서 다들 많이 힘들었을 듯하다.


탑정리로 가는 둘레길 내리막도 정말 까꼬막이다. 오른쪽 위에 보이는 정자를 지나서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길이 갈라지는데 우리는 여기서 다시 까꼬막을 올라야 한다. 산수유마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경치를 볼 요량이다. 이쪽도 최근에 정비가 되어 아스팔트 포장이 된 것이 아마도 여기 캠핑장+펜션과 산수유마을을 연계하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리막길 좌우로 산수유 나무가 길이나 밭을 뒤덮고 있지만, 꽃은 아직 만개하지 않아 노란 물감을 살짝 뿌려 놓은 듯이 노란 흔적만 보인다. 원래 만개해도 그렇기는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꽃망울만 맻힌 게 더 많다.


나들이장터라고 산수유마을 아래  조성된 식당가 건물에 있는 봉성피자에 들어간다.  콤비네이션 큰 사이즈에, 닭 봉 큰 걸 주문하고 산수유막걸리를 주문하니 여 사장님이 난감을 표정을 짓는데, 남 사장님이 사다드려 그런다.  블로그에서 이 동네분들인지 피자에 막걸리를 드시는 걸 보고 피자가게에서 막걸리도 파나보다 싶어서 신기했다고 하니, 직접 사와서 드신거란다. 그러면 사다 먹으면 되는데, 미안하게도 직접 사다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많이 늦은 점심이기에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고는 산수유꽃 조형물이 있는 곳을 거쳐 평촌마을을 한바퀴 돌아 나온다. 원래 계획은 고산로 고개를 하나 넘어 섬진강 자전거길을 따라 구례까지 복귀하는 것이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구만제로를 따라 돌아온다. 구만제 앞에서 점심 전에 넘었던 길을 알아보고는 다들 원성이 자자하다.


뒷바람으로 편하게 복귀할 줄 알았던 길은 맞바람과 씨름하며 1시간여을 달려 터미널에 도착하니 2시간 가까이 여유가 생긴다. 바로 출발하는 차는 만원이라 차 시간 변경은 불가능하다. 



힘들게 카페를 찾아(아마도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각자 취향대로 한 잔씩 마시며 오늘 하루 중 제일 편안한 시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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