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2015. 10. 25. 10:30

1. 꿩 대신 닭


가을에 대마도를 가보자는 해밀님의 제안이 있었습니다. 마왕님과 엘이님의 후기를 보고 후끈 달아오른 열기로 탄력을 받던 중 대마도 가는 배편이 쉽지 않습니다. 국내선 항공권 마냥 며칠 기웃거리면 자리가 나지 않을까 했는데 아닙니다. 대마도는 당일 여행도 많이 하는 곳이라 그런지 자리가 나올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가을을 흘려보내기엔 열기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정한 곳이 제주도. 


대마도 경험을 거름삼아 일찌감치 항공편을 예약했으니 이젠 3일 동안의 여정을 어떻게 채울지 그림을 그립니다.

해안선 따라 일주하는 환상도로는 원래부터 안중에 없었고, 오름과 임도를 찾아 봅니다만 제대로 정보가 안 나옵니다. 그러던 중 제주도의 어느 샵에서 2박3일 코스로 제안한 길이 좋아 보입니다. 해밀님도 흔쾌히 동의합니다. 포탈의 지도 로드뷰를 보면서 여기에 조금 더 세밀하게 그림을 그리면서 길을 완성해 갑니다.



2. 자전거 부치기, 박스 보관하기


김포공항 1층 gate 2번쪽 수하물보관소에 하루 전날 예약하고(대부대가 아닌 이상 필요도 없었습니다), 평소 출근시간에 나와 자전거로 이동합니다. 마곡지구 공사판에서 먼지도 조금 먹어주지만 공기가 미세먼지로 원래 더러우니 그보다 조금 큰 덩어리 몇개 더 마신다고 큰 일 생기지는 않습니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는데 해밀님이 저보다 먼저 와서 포장 중입니다. 박스가 커서 앞바퀴만 분리하면 됩니다. 조금 슬퍼지만 키에 맞게 안장은 내릴 필요도 없습니다. 


카트에 각자 싣고 수하물 부치려 갔더니 저희보고 올려 달랍니다. 이럴때는 녀자이지, 칫. 

마음을 읽혔나, 제 박스는 점검 들어옵니다. 안장가방을 연결하고 그 안에 본드 깡통을 넣어뒀더니 검색대에서 걸립니다. 검색대에 있던 직원이 잘 안다는 듯이 '고무본드죠?' 해서 그냥 넘어 갈 줄 알았더니, 눈으로 확인하고 다시 테이프를 두릅니다(돌아올 때는 본드를 배낭에 넣었더니 그냥 통과하네요). 


제주공항에 내리니 자전거는 직원이 직접 가져 옵니다. 즉 자전거가 나오면 그 비행기의 짐은 다 내린 겁니다. 천천히 기다리면 됩니다. 절대 일찍 안 나옵니다. 

수하물 보관소에 가니 시간으로 계산해서 보관비를 받습니다. 새롭게 박스 구입, 포장하려면 한 대당  2만원으로 김포공항보다 5천원 싸긴 한데 포장하는거 별거 아닙니다. 돌아 오는 길에 테이프만 한 통 사오면 될 거라서 보관하기로 합니다. 박스는 하나로 묶어 계산하고, 김포공항에서 포크 보호하느라 앞에 끼운 종이, 앞 휠 허브 둘러감싼 완충재도 그대로 안 버리고 박스 안에 넣어서 흘러나오지 않게 해줍니다. 목요일 12시 조금 덜 된 시간인데 토요일 오후 6시까지 해서 13,000원입니다.


3. 첫날(공항 - 서문시장 - 사라봉 -  사려니숲길 - 교래 한라산게스트하우스)


이제 출발합니다. 출발 전에 지도 한 번 더 확인하고...


공항 앞 올레길 끈을 따라 잘 나가는 듯 합니다만, 금방 길을 잃어버리고 용두암까지 도로 이정표보고 가게 됩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비교적 한산합니다.




용연계곡 올레길은 사람이 많아서 피하고, 용언교로 돌아 나오면서 서문시장 찾느라 헤매지만 해밀님 폰으로 지도 검색해서 해결합니다. 요즘은 편한 세상이지만 이럴 땐 조금 여행의 맛이 줄어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편한게 안 좋은 건 절대 아니지만요. 일부러 검색은 최소화하고 서문시장 일번지식당을 찾아 갑니다. 

블로그 보고 왔다니 주인 아주머니가 아주 좋아하시네요. 좀 전에도 몇 팀 거쳐갔다고 합니다.  점심으로 우럭조림을 먹습니다. 단맛이 강하지만 끓일수록 청양고추의 매운 맛이 우러나서 맛이 더해갑니다. 2인분 2만원, 공기밥은 따로 계산하네요. 우럭은 4마리. 굳이 갈치조림 이런거 아니라도 간단한 몸국 등등 많이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길을 나서니 동문재래시장이 보이고 여기서 제주항 방향으로 갑니다. 원래는 올레길 따라 가는건데 공사판도 있고 해서 또 길을 잃고 막무가내로 가다보니 국제여객터미널까지 갑니다. 


산지등대 아래에서 '이 길이 아닌가벼'. 오르막 한 번 올라줍니다. 제주도는 섬이잖아요.


사라봉 올레길 이정표 따라 갑니다, 올레길 맛을 느낄려고. 로드뷰 보고 오를 만하겠는데 했는데, 아닙니다. 점심 과하게 먹었으면 길바닥 좀 더럽힐뻔 했습니다.


하지만 금방 이렇게 제주도다운 모습이 조금 전 고통을 잊게 해줍니다.



조금만 더 오르면 사라봉 정상입니다. 곧이어 시원하게 제주박물관 쪽으로 내려옵니다.


박물관사거리 앞에서 잠시 어리둥절합니다. 이정표는 안 보이는 위치인데 길 모양이 X자로 묘합니다. 지나는 사람에게 물으니 외지에서 오셨군요. 그렇죠. 낯선 곳에서 길 물으면 100% 외지인입니다. 97번 번영로를 찾아서 본격적으로 오늘의 목적지를 향해 갑니다.  

봉개 대기고 앞에서 큰 길을 버립니다. 무지막지하게 달리는 차들을 피해 봉개동길이라는 마을길로 올라갑니다. 제주도 시골의 마을길을 이리저리 구불거리면서 가다가 감귤 수확 창고에서 귤도 가방이 미어터지도록 얻어서 메고 갑니다. 너무 무거워서 가는 중간중간 틈나는대로 먹어서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여봅니다.


말은 감귤을 안 먹는군요. 냄새만 계속 맡을 뿐입다.



계절의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푸른 밭에 해밀님이 뛰어듭니다.


방풍림도 어마어마합니다. 덕분에 무지막지한 깡패 바람을 막아주어 한결 수월합니다.


목장이 많다보니 이렇게 풀밭도 많습니다. 


명도암 부근에서 다시 도로로 나옵니다.


4.3평화공원 직전입니다. 이 공원에는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을 태운 버스가 여러 대 들어 옵니다. 사려니숲길 순환무료셔튿도 있네요. 


그런데 제주도는 자전거를 너무 싫어합니다. 도로에 갓길은 없고, 차들은 무지막지하게 달리면서 빵빵거립니다.


잠시 이렇게 뜸할 때도 있지만, 언제 또 쌩하고 달려올지 모르니 뒤가 매우 신경쓰입니다.


차들과의 위험한 동거를 한참이나 하고서야 사려니숲길 입구에 도착합니다. 네비들이 죄다 여기를 입구로 알려주나 봅니다. 약간 어두워지려는 늦은 시간임에도 주차된 차들이 빼곡합니다.

 

남쪽이라는 고정관념에 예상치 못한 단풍이 혼을 빼놓습니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립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해밀님 표정이 핼쑥해집니다. 중간에 고글을 벗어놓고 온겁니다. 어두워지는 시간에 산 속에 들어오니 고글이 방해가 되어 옆에 놓았다가 그냥 왔네요. 어쩝니까 돌아가야죠.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고글을 놓았던 자리를 알기에 한참을 되돌아갑니다. 그래도 그 길이 힘들지는 않습니다. 덕분에 조금 더 즐길 수 있으니까요. 되돌아 나오는 길에 이 곳을 관리하는 직원을 차로 길을 막습니다. 창문을 내리더니 자전거 진입금지라고 걸어서 다니랍니다. 입구에서 못봤는데...어쨋든 시간을 촉박하고 고글 놓았던 자리로 돌아왔으나 보이질 않습니다. 해밀님은 혹시나 해서 더 앞으로 가본다고 합니다. 관리소에 물어도 봤지만 없다고 하네요. 실망감에 출발하려는 순간, 해밀님이 배 속 깊숙한 곳에서 한 음절을 토해냅니다. 


이렇게 길가 옆 나뭇가지에 곱게 쪼그리고 있는 고글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놓은 사람이나 이걸 찾은 사람이나 둘 다 센스쟁이들입니다. '누군지, 복 받을거야'를 몇 번을 외쳐주고, 이제 "사람이 (거의)없는" 길을 달려줍니다. 잘못하면 산 속에서 길 잃을 분위기입니다(혹시나 사려니숲길 담당자님. 죄송합니다. 어두운 곳에서 죽기 싫어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걷지 않고 달렸습니다).   


붉은오름자연휴양림 다 와서는 이렇게 피톤치드로 허파를 소독합니다.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옆으로 하산합니다. 6시를 넘었습니다. 어둑어둑합니다. 짐을 줄일려고 전조등을 챙길까 말까 고민했던게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이젠 밤길을 도로를 따라 교래까지 가야 합니다. 어두운 길에도 마사회 경마목장이 양옆으로 장관입니다. 이곳을 지나고부터는 보이는 모텔, 민박, 게스트하우스는 무조건 전화 걸어 봅니다만 여의치 않아 교래보건소 앞까지 옵니다. 


편의점에 물어서 한라산게스트하우스로 찾아 들어갑니다. 제주로 오기 전 검색했던 곳이긴 한데 8인실(?)로 대규모 인원이 자는 공간이라 잠에 예민한 저한테는 맞지 않아 안중에 없었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생각과 달리 방은 의외로 만족스럽습니다. 캡슐처럼 1인 공간이 분리되고, 발 앞쪽으로만 틔여 있습니다. 

여기는 한라산 등반이 주목적인 분들이 많이 머무는 곳이어서 그런지, 밤에 비교적 조용하고 아침에 일찍들 일어나서 다 사라집니다.  

  

4. 둘째날(게스트하우스 - 삼다수목장 - 오름 - 월평마을게스트하우스)


아침에 나와 보니, 원래는 민박, 식당을 겸했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걸로 보이는 게스트하우스입니다.


계획 상 첫날 오후에 봤을 삼다수목장입니다. 교래사거리에서 가까우니 잠시 들러 봅니다.

아침 안개, 미세먼지에 희뿌연 시야가 썩 좋지는 않습니다.

해밀님은 포인트 찾아 바쁘게 움직입니다. 개인 목장이라서 최대한 조용히, 흔적없이 둘러보는게 예의입니다.









막상 사진을 찍어보니 막장 사진도 괜찮아 보입니다. 해밀님의 손에서 탄생한 그림이 기대됩니다.





시간을 봐서는 계획대로 움직이다가 노숙할지도 몰라서, 오늘의 주제인 오름 중 하나인 백약이오름을 생략합니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많이 아쉽습니다. 

앞오름으로 가는 길이 처음에는 성산 방향이라서 관광버스들이 옆으로 쌩쌩 달립니다. 그나마 맞으면에 차가 없으니 조금은 옆 공간을 많이 벌려주네요. 

비자림로로 꺽으니 이젠 차가 없어집니다. 아침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미세먼지는 여전하지만) 가볍게 나아갑니다.


오름 사진은 많이 봤지만 직접 밟아보는 오름이 기대됩니다. 첫 오름이 앞오름입니다. 앞으로 오름은 어떤 모습으로 서있을지 흥분됩니다.


오름 오르는 길. 계단만 아니면 내려갈 때는 쭉 타고 내려갈만해 보입니다.


한바퀴 돌아 오는 길. 소똥이 엄청 납니다. 따끈한 놈도 있으니 발 아래를 엄청 조심해야 됩니다.


저 아래 우사가 있는데, 여기도 목장의 일부이기 때문에 소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모양입니다. 


생전 처음 올라보는 오름. 크게 다르지 않은 형세이나 오름마다 저마다의 고유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니 신기합니다.


힘들게 올랐지만, 내려올 때는 짧지만 재미있습니다.


다랑쉬오름으로 가는 길에 공사중 표지판이 있어 돌아갑니다. 나중에 보니 자전거는 그냥 가도 되는 길이었습니다만 덕분에 멀리서 다랑쉬오름을 한바퀴 돌아 보면서 입구로 들어갑니다. 여기는 앞오름과 달리 수학여행 버스들이 들어 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빵빵거립니다. 산으로 자전거를 들쳐메고 가라는 건지.

다랑쉬오름은 주변으로 임도가 보여서, 당초엔 임도를 한바퀴 돌고 오름을 올라 갈 에정이었습니다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임도만 한바퀴 돌기로 합니다.

삼나무인지 조림이 잘 되어 있습니다.


가까이도 멀리도 억새가 꽃처럼 하늘거립니다. 



한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 옵니다. 맞으편 아끈다랑쉬오름은 사람이 적어서 올라가 보기로 합니다. 오름 바로 앞에서 내려 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자전거도 가져가 볼만하다고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불가능은 없지요. 

해밀님은 오늘 7부로 바지를 바꿨네요. 해밀님이 억새의 감촉을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억새의 스킨쉽을 맘껏 즐깁니다.





정상에 오르니 온통 억새밭입니다. 오름 전체가 억새로 뒤덮여 있는데, 키가 사람을 넘습니다.



오늘 하늘은 사진 찍는 걸 안 도와줍니다. 오름에서 내려오면 햇살이 좋은데, 오름에 오르기만 하면 구름 속에 숨어 버립니다.



저 멀리 일출봉이 보이고, 아래엔 밭이 푸른색과 갈색이 섞여서 달력에서나 보던 그림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잠시 후 저 곳을 자전거로 지나 갑니다. 그래서 저 색깔의 조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랑쉬오름 맞은편입니다.

용을 쓰고 오른 해밀님 뒤로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이 보입니다.

여기도 수학여행버스가 주차장이 비좁게 들어서 있었지만 다행히 조금 있으니 다들 하산하기에 자전거로 오를 수 있었습니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조금씩 오르내립니다. 유명한 오름이다보니. 




용눈이오름에서 제일 높은 곳입니다.



돌아 내려가야 하는 길 앞에 바람개비들이 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제가 본 전국의 바람개비들이 미친듯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게 아쉽습니다만, 선풍기 돌듯이 도는 날이면 밖엘 나가지 않겠죠, 아마도. 



해밀님이 맞은편 꼭대기에 먼저 올라갔습니다. 어떤 영상이 나올지 기대됩니다.



이제 성산으로 갑니다. 제주레일바이크를 지나서 찻길을 벗어납니다. 

고사리밭입니다. 밭중 녹색은 고사리, 무, 당근(?)입니다.


갈색밭은 목장용 초지이든지, 콩밭(아니면 깨밭)입니다.


이렇게 제주 깊숙한 곳을 통과합니다.



그러면 일출봉이 점점 가까워 지고, 왼쪽으로는 우도도 보입니다.


두산봉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두산봉도 올레길중 하나인데 그냥 지나갑니다. 어제 사라봉의 악몽에 서로 뜻이 통합니다.



시흥마을 돌담길은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마을을 한바퀴 돌아 나오면서 눈이 즐겁습니다. 이젠 바다로 갑니다. 그냥 바다가 있음직한 방향으로 길을 따라 가면 됩니다. 그러면 일출봉이 더 다가오고, 파래가 밀려와서 바다에 밭을 만들어 놓은 그런 바다를 만납니다.


또 다시 해밀님은 바빠집니다. 




일출봉 들어 가는 길은 차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래서 오조포구 쪽으로 난 둘레길로 회피합니다. 여기서 보는 일출봉도 좋아요.







포구에서 마을 입구까지 들어간 곳에 있는 시설물은 뭔지 모르지만, 물고기를 가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는 아니지만, 큰 사고 날 뻔한 위험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데크는 왜 끄크머리에 꼭 계단을 설치하는지...


데크길 끝나는 곳에 있는 족지물이라고, 용천샘이라고 합니다. 윗물은 여탕, 아랫물은 남탕이라고...무심결에 읽어가다 잘못 읽었나 다시 읽어 봅니다. 고정관념은 무서운 거래요. '윗'물이라고 하니 당연히 남탕이겠지 했습니다.  


섭지코지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바닷가 따라서 자전거로 쭉 돌아나갑니다. 등대는 당연히 안 올라갑니다, 엄청난 인파에 질려서. 대신 아래에서 누구나 찍는 사진은 찍어줍니다. 


이제부터는 바닷길입니다. 그래도 제주 왔으니 해안길 맛은 봐야죠. 결론은 역시나 싫습니다. 김제 지평선에서 질린 맛이 수평선에서라고 다를리가 있나요. 하늘과 맞땋은 일직선을 보면 금방 질립니다. 평탄한 삶이 나중에 돌아보면 그렇게 재밌는 삶은 아닌 모양입니다. 꼬부랑 꼬부랑 옛마을길같은...   


이런 차들도 있습니다. 반 정도 걸친 차는 애교로 봐주겠는데, 너무 합니다. 이 길에 차가 많은 것도 아니고. 저 아래 바다에 보니 낚시대 드리우고 서 있네요. 


신산마을에서 해안도로를 끝내고, 시외버스로 서귀포로 넘어가려합니다. 그러나 버스가 거부합니다. 이런 일이...용달, 짐옮김이서비스 등 몇군데 전화해보니 8~10만원 달랍니다. 그냥 달려서 그 돈으로 소고기 사먹지 합니다.

용감히 나선 길에 뒷바람이 도와줍니다만, 제주는 섬입니다. 오르내리 쉽없이 롤러코스터를 타니 거리가 좁혀지질 않습니다. 


월드컵 경지장까지 40여km인데 서울에서 생각하는 시간대로 거리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트럭을 찾습니다. 다행히 남원 근처에서 트럭을 얻어타고 서귀포 입구까지 20여km 정도를 점프합니다.

덕분에 어두운 길이라도 월평마을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아니었으면 구 서귀포시에서 자야지 싶습니다.


월평마을게스트하우스는 둘이서 독차지합니다. 방이 이렇게 반가운 건 여행길에서나 맛볼 수 있는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기쁨입니다.둘레길이 끝나는 송이슈퍼 앞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슈퍼에서 아침 먹거리를 간단히 준비해서 들어 옵니다.




5. 셋째날(월평 - 돌오름임도 - 1100도로 - 애월 - 동문재래시장 - 공항 - 한강)


삼일째 접어드니 몸도 슬슬 피로가 쌓입니다. 오늘은 임도도 있고, 1100고지도 올라야 합니다. 함백산 생각하면 될듯한 고도입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준비해서 8시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섭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지만, 미세먼지로 시야가 좋지는 않습니다.


어제 밤에 내려온 마을 뒷길은 수직이어서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안나서 도로로 살짝 우회합니다만 여기도 매일반입니다. 하원입구까지 올라와 일주도로를 만나고 중산간도로로 올라가기 위해 북쪽으로 계속 진행합니다. 이어서 산록도로까지 오르는 길은 태백에서 함백산 오르는 길이랑 비슷합니다. 


멀리 한라산이 길게 늘어진 비탈을 보여주며 별거 아니니 어서 올라 오라고 손짓합니다만, 속지 않습니다. 다 털고 가능한 천천히 올라가야합니다. 


탐라대 입구. 힘들지만 여기는 이제 시작을 알리는 곳에 불과합니다.



산록도로를 만나 서귀포자연휴양림으로 바로 올라가지 않고, 서쪽으로 산록도로를 따라갑니다. 돌오름 임도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차들은 양이 줄어드니 질이 늘어납니다. 속도가 장난아닙니다. 로드킬 당할까 두려울 정도로 비행기 이륙할 때의 소음을 내면서 달립니다. 간혹 나오는 다운에서는 우리도 기분을 내어보긴 합니다만, 갓길도 없는 이런 길은 빨리 벗어나고 봐야 합니다.


안덕쓰레기매립장으로 찾아들어가면서 한숨 돌리나 싶더니, 이젠 쓰레기차들이 엄청 들어 옵니다. 이른 아침이다보니 시간때가 맞았나 봅니다. 


이런 이정표가 나오면서 더이상 트럭을 안 마주쳐도 되니 좋습니다만, 조금은 유쾌하지 않은 냄새를 맡으면서 올라가야 합니다.  아무리 울창한 숲이라도 매립장에서 날라드는 향기를 전부 걸러내지는 못합니다.


초입은 삼나무, 편백나무가 늘어서 있어 푸르름 속에서 상쾌함을 즐깁니다.


정원등처럼 나즈막히 서있는 줄기 끝에 빨간 열매가 탐스러운 놈이 있어, 나중에 찾아보니 천남성이라는 풀인데 독성이 강하다고 합니다. 잘 모르는 건 뭐든지 손대지 않고 눈으로만 보는게 제일이지 싶습니다.  


조릿대 군락이 펼쳐지다가 조금 더 오르니, 어느 순간 단풍이 나타납니다. 터널을 만들고 있어 하늘을 보니 잠시 드러누워있으면 좋겠습니다만, 돌오름임도도 어느 순간 한라산 둘레길로 개발되어 산행객이 많습니다. 조만간 자전거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지 싶습니다.




표고밭 앞에서 1.6km를 가면 1100도로와 만납니다. 이 길은 고도가 높고 서귀포시를 내려다 보는 방향이어선지 전체가 단풍이 이어지고, 낙엽 밟는 즐거움을 같이 주고 있습니다.






1100도로와 만납니다. 이제까지의 즐거움은 뒤로 하고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야 합니다. 북악길 보다 드문드문 지나는 차도 힘들어 하고, 서늘한게 꽤 높이 올라 온듯합니다. 하기야 10km 이상을 임도로 올라왔는데 안 그럼 너우 억울하죠.   



1100고지에서 내려오는 길은 점점 기온이 올라가는게 느껴지다가 산록도로를 만나니 이제는 덥습니다. 산록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려서 애월읍공동묘지 방향으로 꺽으면, 내리막을 무수천을 끼고 무동력으로 평화로까지 내려옵니다.  

길을 잠시 지나쳐, 다시 올라 와 무수천을 따라 이젠 제주 북쪽 바다를 향해 갑니다.  


무수천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이게 천이라는게 무색할 정도입니다. 비가 많이 온 후에 오면 좋겠지만, 지금은 둘레길로 이 길을 걷고 싶은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그래선지 한 사람도 못봤습니다. 


이호테우 해변 앞에서 점심을 먹고 백사장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해밀님은 이제 지나가는 연인까지 잡아서 포카리스웨트 카피작을 만들고 있습니다. 시킨다고 다 하는 저 사람들은 뭐지.


공항 앞으로 해서 올레길을 따라 오다가 바닷가 바로 앞에 카페를 찾아 차 한잔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지만, 그런 카페가 없습니다. 해밀님 5년 전 기억이랑 너무 다른 곳으로 바뀌었네요. 아쉽지만 동문재래시장을 잠시 구경하고 공항으로 갑니다. 4시 무렵이지만 공항은 언제나 그렇듯 북적거립니다. 전 좌석 매진이어서 복귀시간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 연착까지 이어져 출발시간은 9:10이 9:40분으로 늦어지고, 김포공항 도착해서 자전거 찾아 전철역으로 들어서니 죄다 막차들의 연속입니다. 덕분에 당산역에서 한강을 따라 집에 도착하니 일요일로 바뀌었습니다.



6. 집으로의 복귀를 위해 떠나는 여행


의식주의 우선 순위가 주, 식, 의로 바뀌는게 여행길입니다. 어디서 잘 곳 찾는게 우선이고, 먹는 건 뒷전인 고생길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주라고 특별한 음식을 먹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주 음식이라고 해서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간절함이 덜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보다는 더 간절한게 있었으니까요. 


길동무한 해밀님과 별반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습니다. 해 떨어져 길도 안 보이는 곳에서 찾아든 게스트하우스는 허기만 채우고 베게에 머리가 닿은 순간 기절한듯 자버렸으니까요. 올해 초 처음 만났으면서 오래된 친구처럼 두말없이 같이 한 길이니, 말이 있어야 소통을 하는건 아닌가 봅니다. 



기분 좋은 피곤함에 미세먼지로 고생하던 하늘이 아무리 맑아도 굳이 나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날입니다. 

소설 속에서 흔히 바람끼 많은 남자들이 집을 떠났다가 한겨울 슬그머니 집에 돌아오는 광경이 떠오릅니다. 소설 속 남자는 따스한 봄날이 오면 다시 또 길을 나섰는데, 저도 아마 며칠 지나면 또 나서지 싶습니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의 마르셀처럼 마들렌을 깨물 필요도 없이, 한겨울의 거친 기운이 지나고 봄날이 몸에 차면 언제나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병 아닌 병입니다. 이 병은 집을 나가야 낫고, 집에 들어와야 끝나는 희귀한 병이니, 무한반복되는 병입니다.



1부.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4425AB947B6DE5A6E82DB1B943DB31A9A2C7&outKey=V1267b0790591bcd25bf6788e63201f8d332e68ebe6c1d36674f0788e63201f8d332e&width=720&height=438


2부, 3부.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BCEC86C0018B01BC96D73CEBDBF6208397DE&outKey=V1210f9fa26698eefec6401d2991dd77d6e08e3e904109975511501d2991dd77d6e08&width=720&height=438


 

'자전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11.15 광덕산, 봉수산  (0) 2015.11.16
mail order 롱빕, 신발  (0) 2015.10.27
2015.10.16 가리왕산  (0) 2015.10.17
2015.10.11 남산, 북악  (0) 2015.10.11
2015.10.3 강화도  (0) 2015.10.04
Posted by LateButNotTooLateTo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