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엔 자전거 정비에 시간을 보냅니다.
어제 다녀온 왕방산 흙먼지 털어내고, 내일의 청태산을 준비합니다.
체인은 오랜만에 경유통에 담아서 찌든 때를 빼주고, 뒤 타이어 마모가 심해서 조금 덜 마모된 타이어로 교체합니다.
이전에 튜브 교체하다가 타이어가 림과 궁합이 안 맞는지 끼우기가 너무 힘들고, 결국 힘으로 하다가 튜브만 몇 개, 그것도 새것을 해 먹었던 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림테이프에 덕지덕지 붙은 접착제도 알코올로 깨끗이 닦아주고 타이어 끼우기 전에 WD40을 듬뿍 뿌려서 마지막 림에 물릴 때는 주걱 없이도 손 힘만으로 수월하게 끼웁니다(그렇다고 나갈 때마다 WD40을 가방에 넣어 갈 수도 없고).
생각난 김에 신발장에 처박아 둔 튜브 몇 개도 꺼내어 펑크를 때웁니다. 새 튜브도 주걱에 찍힌 자리가 여러 군데이다 보니 곧 누더기가 됩니다. 5개 정도 튜브를 때우고 나니 오랜만에 묵혀둔 숙제를 한 기분입니다.
일기예보가 불안하더니, 결국 청태산 가는 건 취소가 됩니다.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잔다고 해도 잠이 깨어서는 다시 잠들지 못합니다. 바깥에 나와 보니 햇살이 좋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어쩔 수 없지 하고 마음을 다독여 봅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하늘이 다시 어두워지고 비가 조금 뿌리고 가니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만, 여전히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 와중에 남산, 북악을 가자는 해밀님 문자가 옵니다.
남산, 북악은 자전거, 특히 로드바이커들에게는 성지마냥 가는 곳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자전거로 가 본 적이 없는곳입니다. 차량과 나란히 달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썩 내켜하지 않던 길입니다만, 오늘 같은 날은 한 번쯤 가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11시에 집을 나서는데 현관문에 나오니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집니다. 같이 엘리베이터 탄 주민은 우산을 가지러 집으로 되돌아 갑니다. 순간 나가야 되는지 갈등이 생기지만, 일기예보가 낮 동안 1mm 미만의 비라고 하니 큰 지장이 없을거라 생각하고 정 안되면 한강에서 돌아올 요량으로 나가 봅니다.
바닥이 젖을듯 말듯 내리는 비에도 한강 자전거도로에는 제법 라이더들이 보입니다.
한남역에서 해밀님을 만나 한남오거리에서 장충체육관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오르막을 달립니다. 버스 전용차로가 바깥 차선이다 보니 버스 눈치보느라 신경 쓰이는 길입니다. 북한남삼거리에서 장충체육관 이정표를 따라 가지 않고 그 옆의 일방통행인 마을길로 들어 가는데 하필 바로 뒤에 차가 한 대 들어 오니 비좁은 길에서 추월시키지도 못하고 나오지도 않는 속도 올리느라 괜히 힘만 더 듭니다. 다시 도로의 본류를 만나 이젠 서울타워를 보고 장충단로를 따라 가면 됩니다. 편도 2차선이니 그나마 편하게 오르지만 버스들 매연을 맡으며 가는 건 결코 유쾌하지 않습니다. 조금의 업힐 후 바로 다운이지만 국립극장 앞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아 본격적으로 남산 오르는 길이 시작됩니다.
여기는 일반승용차는 못 다니고, 시내버스(전기)와 관광버스만 다니는 길입니다. 도로를 오르다가 뒤에서 차 소리가 들리면 인도로 비켜주었다가 다시 도로로 들어가서 달립니다.
전망대 두군데에서 쉬면서 사진 찍으면서 편안하게 오르다 보니, 어려운 건 없습니다. 경사도로 완만하고 거리도 길지 않습니다. 도심 한 가운데임에도 불구하고 산 속이라고 공기도 맑고 좋습니다.
버스 종점이 자전거도 갈 수 있는 한계입니다. 남산타워 쪽으로는 진입금지이고 관광객도 많습니다. 일전에 버스로 올라와 야경을 볼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 도로가 비좁더니 그에 비하면 매우 한산한 모습입니다.
이제 남산도서관으로 다운입니다. 새롭게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어서 타이어에서 진동이 올라 오질 않습니다. 이 맛에 로드들이 내리쏘면 70km/h 이상의 속도가 나올 것 같습니다. 도서관을 따라 우회전해서 터널을 지나 시청쪽으로 내려갑니다. 옛 대우빌딩이 보이니 서울역 광장 앞쪽인 걸 짐작합니다.
숭례문 옆을 자전거로 달려 보기는 처음입니다. 시청 광장도, 광화문 광장도 무슨 행사인지 앰프에서 음악이 요란하게 나옵니다. 여긴 주말이어선지 의외로 차가 적어 상대적으로 편하게 통과합니다.
경복궁 앞에서 통인시장 앞 도로를 올라가다 경찰에게 물어 유명한 중국음식점을 물으니 통인시장 정자 쪽 '영화루'를 알려줍니다. 식당 앞에는 식신로드 맛집이라고 칠판에 적혀 있습니다만, 해밀님이 애초 찾던 집은 아닙니다. 급히 검색을 하니 청운초등학교 약간 위쪽에 있는 '중국'이라는 식당입니다. 이왕이면 당초 목적지가 더 좋을 것 같아 '중국'으로 급히 올라 갔지만 일요일은 휴무라고 합니다. 식당 안을 들여다 보니 작은 테이블 4개(의자도 무지 작아서 제 덩치에도 불편할 정도로 작은 의자와 함께), 창문 앞으로는 일렬로 벽에 테이들이 고정된 자리(의자가 4개씩)가 2개 있는 조그마한 식당입니다만, 출입구 유리문에 쓰여 있는 11시부터 재료 떨어질 때까지 영업한다는 문구가 이 집의 유명세를 넌즈시 자랑하고 있습니다.
다시 통인시장으로 내려와 '영화루'로 돌아 가니, 줄이 늘어져 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 들어가니 주인이 좀전에 대기줄 없을 때 들어오지 이제 오냐고 반갑게 아는 체를 합니다.
청양 고추 간짜장, 짬뽕을 시켜서 짜장부터 한 젓가락 집어 봅니다. 입에 넣는 순간 목으로 청양 고추의 매운 맛이 들어 옵니다. 호흡 잘못하면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하고 입에서 다시 나올 수 있는 위험한 상황입니다. 짬뽕도 강한 맛이지만 둘 다 인공 캡사이신의 매운 맛이 아닌 청양고추로 낸 맛이라 맵지만 덜 자극적입니다. 짜장의 달짝지근한 맛이 매운 맛과 어우러져 짜장 쪽에 손이 먼저 갑니다만, 짬뽕도 상당한 양의 해물이 들어 있어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면발을 젓가락으로 먹을 때보다 더 맛있습니다. 밥 한 공기를 추가해서 반씩 나누어 비비고, 말아 먹으니 더 맛있습니다. 혼자 오면 안타깝게도 이 맛을 느끼기 힘들고 둘 이상이 와서 공기밥을 필히 먹어봐야 할 걸로 보입니다. 다만 여기도 자리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가기는 적절해 보이진 않습니다.
해밀님 지도 상으로는 청운초등학교로 올라가야 하지만, 늘푸른님 번개때 본 수성동계곡이 좋아 코스를 변경합니다.
그땐 보지 못한 옥인아파트 흔적도 보고 인왕산 자락길로 올라 섭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가니 경복궁, 청와대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 나옵니다.
곧이어 창의문이 나오니 해밀님이 길을 알겠다고 하는데, 여기가 북악스카이웨이네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를 완만히 업힐하다 보니 팔각정에 도착합니다. 오늘 남산 팔각정에 이은 두번째 팔각정입니다. 비 그친 후의 맑은 공기라서 자동차 매연 조금 맡더라도 상쇄가 되는 곳입니다.
이제 다운힐인데, 추워서 몸이 움츠러 듭니다. 다운힐이 끝나고 대사관로를 따라 왔던 길 방향으로 되짚어 삼청각을 지나 삼청터널로 내려 옵니다.
내려 왔으니 다시 올라 가야지요. 감사원 조금 못미쳐 북촌마을로 들어가 잠시 구경하고(늘푸르님 번개 때는 안내하시는 분이 조용히 하도록 유도도 하고 뭐 그런게 있었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인지 아무도 없어서 매우 시끄럽습니다).
다시 나와 와룡공원으로 올라갑니다. 와룡공원 앞에 오니 늘푸른님 번개 때 내려간 길을 거슬러 올라온 겁니다. 성너머집 앞에서 도로를 벗어나 골목길, 계단을 거쳐서 북정마을로 내려 갑니다. 해밀님이 알고 있는 길보다 수월한 길이네요. 내려갈 때 보니 이 길로 올라 왔으면 짜증이 무지 날 뻔 했습니다. 선자단지 옆으로 해서 성가정 방향으로 갈려고 하는 중에 비가 갑자기 쏟아집지다. 살짝 내리는게 아니라 소나기 수준으로 꽤나 오래 내리다 보니 전의를 상실하고, 비가 그치자 한성대입구역에서 오늘의 자전거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오늘 남산은 그냥 그쳐 가는 길이었고, 북악산을 위에서 아래로 갈지자(之)로 왔다 갔다 하게 되었습니다. 늘푸른님 번개 때 느낀 거지만 서울 시내는 의외로 업다운도 많고 재밌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길도 많은게, 애매한 시간이 생길 때는 이런 길을 다니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해밀님 덕분에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내던 길을 재밌게 다녀 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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