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2017. 2. 8. 09:45

아들만 둘을 낳을 때부터 아직 세상이 통일되기는 난망한데 싶더니 기어코 나이가 차서 큰 놈이 입대를 했다.

2017.1.16.  논산.

일반 보병으로는 가기 싫다고 운전병 지원한다고 하더니, 대학 시험 마냥 응시만 하면 떨어진다.

그러다가 임의로 지정된게 다련장 운영/정비. 아마도 기계공학을 전공한다고 여기로 떨군 모양이다.

입영통지서도 작년 12월 늦게야 오다보니, 기말고사 마치고는 친구들이랑 놀기 바빠 얼굴 보기가 힘들다.

군에 가기 전에 자기 나름의 할 일이라고 여겨져 아무 소리 안 하고 냅두고, 아내한테도 잔소리하지 말라고 일러두었더니 노는게 바빠서 사랑니도 안 뽑고 입영일자를 마주한다.

그래도 부모 말이라고 들은건 설 전에 부산 내려가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인사드리고 오랬더니 두 말 안 하고 잘 다녀 온 모양이다. 설에 내려갔더니 어머니가 대견스러워 하는 걸 보니, 조금 철이 든 행동을 한 모양이다.

이 노친네가 자기 아들은 훈련소 갔다 나왔더니, 벌써 나왔냐고 시크하게 반응하더니, 손자는 이 추운 겨울에 훈련을 어찌 하냐고 걱정이 태산이다. 이 아들은 1.7. 들어갔거든...


작은 놈 사랑니 뽑는 치과 예약이 16일로 겹쳐서, 아내는 작은 놈이랑 치과로, 나는 하루 월차를 내고 일찌감치 출발해서 김제 처가에 들러 인사하고 이른 점심을 먹고는 논산으로 갔더랬다.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입영심사대랑 멀찌감치 떨어진 카페에서 커피 한 잔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입영 전 마지막 통화도 하고, 긴장하는 모습이 간간히 보여 농담도 하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시간에 맞춰 입영심사대 앞에서 헤어진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인터넷에 편지 쓰기로 몇 번 편지도 쓰고, 설이라고 온 가족이 3분 동안 통화도 하고, 지난 주말에는 포상 전화라고 아내랑 또 한차례 전화 통화를 했다.


본격적으로 훈련하기 전 보내온 단체 사진에서 입영 후 첫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연히 무사히 잘 있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눈에 간간히 보이다가 전혀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사진 한 장 올라온 것만으로도 반갑다. 애기같은 얼굴들을 하고 있지만, 군복을 입혔다고 사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2.8) 확인한 두번째 사진. 동일한 현장에서 찍은 사진이니 크게 달라진건 없다. 달라진게 없으니 안심이라고 해야되나.


그래, 그렇다.

너희들이 사는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보다 조금은 덜 부조리한 세상이리라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더라.

내가 바꾸지 못한 세상이니 뭐라 할 말은 없다, 단지 미안할 뿐이다.

군대라고 나아진게 있겠냐.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터. 그 곳에서는 너희들이 배울게 없다고 단언한다.

누군가는 사회생활의 요령을 터득한다느니, 인내심을 키운다느니 하는데, 그게 다 뭔 필요가 있는지.  부조리한 세상을 소리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라고?  사회에서는 그런거 못 배울까봐?  


어찌할 수 없음에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적응이 되었는지, 이젠 편지 쓰기도 시큰둥해진다. 달리 할 말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아 같은 말만 되풀이 하는 내 자신이 한심해서 더이상 쓸 수가 없다. 

그렇게 안타깝게 지켜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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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ateButNotTooLateTo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