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 준비 중에 헬멧 사이즈 조절 버튼이 똑 떨어진다.
오늘 아침 사무실에 있는 즉석본드를 발라서 고정을 시켰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니 만족스럽다 했다.
오후 들어 문득 책상에 얹힌 헬멧에 눈이 가는데, 마침 커튼월로 들어오는 밝은 빛을 받아 멀리서 봐도 균열이 보인다. 뭔가 싶어 다시 보고 손으로 눌러도 보고 하니, 헬멧의 기능을 상실한 걸로 보인다. 이게 언제 생긴 건지 가늠할 수 없다는게 황당하다. 이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타면서 어디 한번이라도 머리를 부딪힐 정도로 넘어진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지난 여름 헬멧 끈에서 땀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서 여유분으로 하나 더 사서 쓰고 다니다가, 그 헬멧을 세척하면서 다시 이 헬멧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물건이라도 관계가 지속되니 정이 쌓인 모양이다. 엄격히는 몸이 더 적응이 되어서 편한 것일테지만, 우리는 흔히 이럴 때 정이 들었다고 한다. 정. 좋은 말이다. 아니, 안 좋은 말이다.
정이 들었다는 것은 내 감정이 개입되어 있다는 건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감정이 투영되는 순간 애증이 생기니 좋은 일이 아니다. 애증이 생기니 물건의 용도에 집중하는게 아니라, 감정으로 물건을 보게 되니 사용에 왜곡이 생긴다. 새 물건을 사면 소중한 마음에 애지중지하게 되는데 그런 마음이야 잠시일 뿐이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오래 사용한 물건에 정이 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장 이 헬멧을 버리는게 아까워 도로를 타거나 할 때는 계속 쓸까 하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든다. 정에 매달려 몸을 상할 일을 꾸미는 어리석은 마음이 생긴다.
무생물에 이런 정이 생기는데, 동물이나 사람을 대함에야 어떠하랴 싶다.
첫인상으로 선입견을 만드는 것도 문제이지만, 일정한 관계가 지속되면서 생기는 정이란 어찌할 것인가. 미운 정, 고운 정, 모두 내가 만든 감정인데, 이 놈이 자리하면서 어찌할 수 없이 힘들어진다. 좋아도 힘들고, 싫어도 힘든 것이 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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